평생 한 동네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온 어르신이 세금 통지서 한 장에 집을 내놓아야 하는 상황, 저는 이 장면이 집값이 오른 게 죄가 되는 기묘한 구조 속에서, 투기와는 거리가 먼 실거주자들이 조용히 밀려나고 있습니다. '세트리피케이션'이라는 말이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현장에서는 이미 오래된 현실입니다.

보유세의 민낯
몇 년 전, 70대 어르신 한 분이 손에 종이 한 장을 꼭 쥐고 상담실을 찾아오셨습니다. 보유세(保有稅) 고지서였습니다. 여기서 보유세란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매년 납부해야 하는 세금으로, 재산세와 종합부동산세를 합산한 금액입니다. 그분이 받아 든 고지서의 금액은 월 연금 수령액을 훌쩍 넘겼습니다.
그분은 투기를 하신 분이 아니었습니다. 30년 전 마련한 서울 아파트 한 채가 전부였고, 그 집에서 자녀들을 키우고 노후를 보내오셨습니다. 공시가격(公示價格)이 치솟으면서 — 공시가격이란 정부가 과세 기준으로 삼는 부동산 평가액을 말합니다 — 매년 세금 부담이 가파르게 늘어난 것입니다. "집을 팔아야 하느냐"는 그분의 말이 아직도 귀에 남아 있습니다.
이런 사례를 저는 한 번만 본 게 아닙니다. 비슷한 처지의 고령 1주택자 어르신들이 해마다 비슷한 표정으로 상담실을 찾았습니다. 소득은 없고, 집은 있고, 세금은 늘어나는 상황. 제 경험상 이건 개인의 재무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 문제입니다.
종합부동산세, 원래 누구를 겨냥한 세금이었나
종합부동산세(綜合不動産稅), 줄여서 종부세는 2005년 도입 당시 다주택자와 고가 부동산 보유자의 투기 수요를 억제하기 위해 설계된 세금입니다. 쉽게 말해, 집을 여러 채 쥐고 시세 차익을 노리는 사람들을 겨냥한 도구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떻게 됐는지, 제가 현장에서 체감한 현실은 꽤 다릅니다.
공시가격 현실화율이 높아지고, 집값 자체가 급등하면서 평범한 1주택자들도 종부세 과세 대상에 편입되기 시작했습니다. 국토교통부 자료에 따르면 종부세 납부 인원은 최근 수년 사이 크게 늘었고, 이 가운데 1 주택자 비율이 의미 있게 상승했습니다. 투기 세력을 잡겠다는 정책이 실거주자에게 화살이 되어 돌아온 셈입니다.
"다주택자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그 방향 자체에 반대하지 않습니다. 다만 문제는 그 칼날이 너무 무뎌져서 투기자와 실거주자를 구분하지 못하게 됐다는 점입니다. 수십 년간 한 집에 살아온 사람과 단기 시세 차익을 노리는 사람을 같은 기준으로 과세하는 건, 제 생각에 조세 정의(租稅正義)에 부합하지 않습니다. 조세 정의란 납세자의 실질적 부담 능력에 맞게 세금을 부과해야 한다는 원칙입니다.
- 종합부동산세: 일정 기준 이상 부동산 보유자에게 부과하는 국세, 투기 억제 목적으로 설계
- 공시가격 현실화율 상승 → 세 부담 급증 → 실거주 고령층 직격
- 소득 없는 1주택자에게 미실현 이익 기반 과세는 실질적 주거권 침해로 이어짐
정든 동네를 떠나는 사람들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낙후된 지역이 재개발되면서 원래 살던 주민들이 오른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해 떠나는 현상을 뜻합니다. 그런데 요즘 제가 더 자주 떠올리는 단어는 '세 트리피케이션'입니다. 세금(稅) 때문에 오래 살던 집을 떠나야 하는 현상으로, 외부 개발이 아닌 정부의 세제가 주거 이탈을 강제하는 구조입니다.
상담을 통해 만났던 고령 매도자 분들의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팔고 싶어서 파는 분이 거의 없었다는 것입니다. 살고는 싶은데, 세금을 낼 현금이 없으니 집을 처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등기소로 향하는 그분들의 발걸음은, 제가 보기에 단순한 자산 처분이 아니었습니다. 수십 년을 함께한 동네와 이웃, 삶의 기억을 통째로 내려놓는 과정이었습니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의 분석에서도 장기 실거주 고령층의 보유세 부담이 소득 대비 과도한 수준으로 올라가고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 바 있습니다. 통계가 말하는 바와 제가 현장에서 목격한 장면이 정확히 일치합니다. 숫자 뒤에 사람이 있다는 걸, 저는 그 상담실에서 배웠습니다.
실거주자 보호, 세제 개편이 답이 될 수 있을까
"집값이 오른 건 사실이니 세금을 내야 한다"는 의견도 있는데, 저는 그 논리가 절반만 맞다고 봅니다. 자산 가치 상승이 실현되지 않은 상태, 즉 아직 팔지 않은 집에 대해 오른 평가액을 근거로 세금을 매기는 것은 미실현 이익 과세(未實現利益 課稅) 문제를 내포합니다. 미실현 이익 과세란 실제 현금을 손에 쥐지 않은 자산 가격 상승분에 세금을 부과하는 방식을 말하는데, 소득이 없는 고령층에게는 사실상 납부 불가능한 구조를 만들어냅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프로포지션 13(Proposition 13)이 자주 거론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이 제도는 취득 당시 가격을 과세 기준으로 고정하고, 매년 상승 폭에 상한을 두어 장기 거주자의 세 부담을 안정시키는 방식입니다. "미국 사례를 그대로 적용하기는 어렵다"는 시각도 있는데, 저는 그 방향성 자체는 우리도 충분히 검토할 수 있다고 봅니다.
국내에서도 장기보유특별공제(長期保有特別控除) 확대 논의가 꾸준히 나오고 있습니다. 장기보유특별공제란 부동산을 오래 보유할수록 양도세 등 세금 부담을 줄여주는 공제 제도로, 실거주 기간에 비례해 혜택을 강화하자는 주장입니다. 여기에 더해 보유세 부과 기준을 취득 원가로 전환하거나, 일정 연령 이상 실거주 1 주택자에 한해 세금 납부를 주택 처분 시점까지 유예하는 방식도 논의 선상에 올라 있습니다. 제 경험상, 어떤 단일 방안도 완벽하지 않지만 현행 구조를 그대로 두는 것만큼은 분명히 잘못된 방향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1주택자도 종합부동산세를 내야 하나요?
A. 네, 공시가격이 일정 기준을 초과하면 1주택자도 종합부동산세 납부 대상이 됩니다. 현재는 공시가격 12억 원 초과 1주택자부터 해당되지만, 공시가격 현실화율이 높아지면서 과거보다 더 많은 실거주자가 과세 대상에 포함되고 있는 추세입니다. "나는 투기를 한 게 아닌데"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가장 먼저 놀라는 지점이 바로 이 부분입니다.
Q. 세트리피케이션이랑 젠트리피케이션은 어떻게 다른 건가요?
A. 젠트리피케이션은 재개발이나 임대료 상승으로 원주민이 밀려나는 현상이고, 세트리피케이션은 세금 부담 때문에 오래 살던 집을 떠나야 하는 현상입니다. 외부 자본이 아닌 정부의 세제 정책이 주거 이탈을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더 역설적이라는 시각도 있고, 저도 그렇게 봅니다.
Q. 고령 1주택자는 보유세 감면을 받을 수 있나요?
A. 현행 세법상 고령자 공제와 장기보유 공제를 합산하면 일정 비율의 종합부동산세를 줄일 수 있습니다. 다만 공제 한도가 있어 공시가격이 크게 오른 경우에는 실질 세 부담이 여전히 상당한 수준입니다. "공제가 있으니 괜찮은 것 아니냐"는 의견도 있지만, 실제 현장에서 만난 어르신들의 고지서를 보면 그 공제가 체감 부담을 줄이기엔 역부족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Q. 미국처럼 취득가액 기준으로 과세하면 문제가 없어지나요?
A. 취득가액 기준 과세는 장기 실거주자의 세 부담 안정화에 효과적이지만, 지방정부 재정 수입 감소나 자산 고착화 문제 등 부작용 논의도 있습니다. 모든 제도가 그렇듯 완벽한 답은 없고, 다만 현행 구조보다 실거주자를 더 잘 보호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개선이 필요하다는 점만큼은 분명합니다.
결론
세금이 주거의 자유를 위협하는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투기를 억제하겠다는 명분으로 설계된 제도가 수십 년간 한자리를 지켜온 선의의 실거주자를 밀어내는 구조라면, 그건 정책이 목적을 잃은 것입니다.
장기보유특별공제 확대, 취득 원가 기준 과세 전환, 고령 실거주자 납부 유예 등 대안들이 이미 논의 테이블 위에 올라와 있습니다. 정치적 결단과 세밀한 제도 설계가 뒤따른다면 충분히 현실화 가능한 방향들입니다. 관심 있으신 분들은 관련 세제 개편 논의를 직접 찾아보시고, 필요하다면 세무사 상담을 통해 본인의 과세 상황을 점검해 보시길 권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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